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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8.인간의 얼굴
말씀: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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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8.인간의 얼굴
십자가에 못박히면 내려오지 못하고 죽는 바로 그 자리다. 그런데 그건 좀 광범위 하기 때문에 보다 더 구체적인 위치가 필요하다. 구체적인 위치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내려오지 못할 뿐 아니라 인간이 찾는 모든 필요에서 벗어난 위치다. 털끝만큼도 인간의 필요와는 관계없는 위치다.
왜 그런가? 하나님은 자기의 모양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모양으로 쓰기 위해서다. 사용하기 위해서다. 이것이 불만인가? 영광인가? 하나님의 모양으로 쓰여지면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인 것이다.
어디에 이보다 더 온전한 위치가 있는가! 내 위치는 내가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쓰시기 위해서 정해 놓은 것이다. 하나님이 100%로 하나님 모양대로 쓰기 위해서 인간에게 100%로 자기 모양이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인간은 각자의 모양이 없다. 자기가 원하는 자기가 아니다. 내가 나를 위해서 나를 사용하려면 모든 것을 다 가져야 할 것이다. 가져도 가져도 부족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위해서 필요한 자리는 딱 한 자리 뿐이다.
그리고 사람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하나님이 이미 정해 놓은 자리다. 그러니까 사람은 하나님의 모양으로 쓰여지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고 또 당연한 것이다.
얼마나 완전한가! 아담은 여기에 불만을 갖고 하나님의 동산을 떠난 것이다. 우리가 이것이 불만스러우면 하나님 앞을 떠나는 것이다. 그러면 그때부터 자기에게 필요한 자기 위치를 만들려고 이마에 땀이 흐르는 것이다.
심지어 세례요한까지도 제사장의 신분을 버리고 제사장의 의복을 버리고 동물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살았다고 한다. 성전에서 나오는 음식에 비해서 얼마나 거칠고 얼마나 험한가. 그래도 그것을 먹으면서까지 라도 하나님께 쓰이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하나님께 쓰이지 못하고 헤로디아의 손에 목이 잘리고 말았다. 사람의 노력이 얼마나 헛된가. 세례요한 만한 노력이 어디가 있겠는가?
그러나 천국에서는 다 저보다 크다고 말씀하셨다. 참 역설이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아무것도 아닐수록 더욱 하나님이 쓰실 수가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은혜로운가. 이것이 신비가 아니고 무엇인가! 사람의 힘으로는 하나님께 쓰일 수가 없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하나님께 쓰이지 못한다. 하나님이 지어 놓으신 그 위치만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쓰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만유가 다 그렇다. 그래서 만유는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자기 자리에 있는 것이다. 사람만 그 위치를 떠났기 때문에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들이 만든 사회는 점점 어려워져 간다. 사람의 필요대로 사람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만든 세계는 완전한 평화다. 완전한 평등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해방인 것이다. 자기 위치를 만들기 위해서 땀을 흘릴 필요가 없고 자기를 가리기 위해서 나무를 심을 필요가 없다.
나무 뒤에 숨을 필요가 없다. 이 얼굴을 내놓고 다닐 수 있는 세계가 있다. 담대하게, 당당하게 인간의 얼굴이 드러날 수 있는 곳이 있다. 이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다. 이것이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세계다. 임마누엘의 세계다.
얼굴 없는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 하겠는가? 얼굴이 있어야 하나님과 함께 할 것이 아닌가! 아담의 얼굴이 보이는 곳이 예수 안에 있다. 그러나 예수는 우리 얼굴이 되는 것이고 예수의 얼굴이 곧 내 얼굴인것이다. 예수 밖에는 없다.
답은 예수다. 만유의 답은 예수다.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 안에 계신다. 예수는 만유를 위해서 모든 것과 모든 것이 되신다. 만유의 주다. 할렐루야!